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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

회사 일이 바빠서 하계 휴가를 못 가고 있었는데, 9월부터는 더 바빠지기 때문에 8월 달 안으로 휴가를 쓰라는 권고를 받았다. 그래서 휴가 2일 + 토, 일요일을 합해서 나와 나노카 그리고 冬春이가 같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첫 날은 '남이섬'. 남이 장군의 묘가 있고 겨울 연가를 찍은 곳이라지만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그런 곳인가 보다 하고만 알고 있던 곳이다. 도리어 최근에 본 책에서 기업의 '혁신' 사례로서 이곳이 소개된 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


집에서는 100km 정도의 거리였고, 과학 기술의 발달 덕에 전혀 힘 안들이고 길을 찾아 갈 수 있었다. 이름처럼 '섬'인 모양인지 배를 타고 작은 강을 건너야 했는데 이 놈의 冬春이는 배에만 올라가면 소리를 지르고 우는 통에 민폐를 조금 끼쳤다.



섬을 한 바퀴 걸으면 40분이면 다 걸을 수 있을 정도의 섬이었는데, 거의 모든 곳에 사람의 손길이 가 있는 것이 여간 공을 들여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아름드리 나무가 간격을 지고 늘어 선 가로수 길만 한 참이 있었고, 길이 아닌 곳에는 잔디나 연못을 만들어 놓았다.



산책로도 좋았고, 이런 저런 가게나 특이한 예술적인 볼 거리가 많았다. 아주 조화로운 자연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아주 한국적인 색채로 섬을 꾸며 놓았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가마솥, 옹이, 한국 전통식의 집안 내부, 장승, 손으로 쓴 한글들...... 60년대쯤에나 있었을법한 아이템을 파는 곳도 있었고 내가 어릴 때 보던 불량 식품(?) 같은 것을 파는 곳도 있었다.

나의 아버지와 나노카의 아버지(장인 어른)는 중학교 동창이기 때문에 나와 나노카가 어릴 때 갔던 '시골'은 같은 지역이었다. 그래서 시골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도 서로 비슷한 듯 했다. 단지 冬春이만 불쌍하게도 그런 것을 알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내야 할 것 같아 안타깝다. 아마 이것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사는 대부분의 어린이에게 해당 될 것 같은데, 한국적인 여러 가지를 다음 세대에 물려 주지 못한 것은 대부분 우리 세대의 책임이라고 생각된다. (모르겠다...... 요새 애들은 컴퓨터 게임도 없는 그 때가 뭐가 재미있었겠냐고 반문 할는지도 모르겠다.)



섬의 중심가에 들어서니 '겨울 연가'와 관련된 설명을 하는 곳이나 사진을 찍는 곳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왼쪽의 사진에서와 같은 가로수 거리도 늘어져 있었다. 연못도 있고 분수도 있고 해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몰려서 사진을 찍는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1인용 자전거, 2인용 자전거, 다인용 자전車(?), 전동 트라이카, 1인용 전동 자동차 등등을 대여하고 있었다. 아직도 내가 자전거를 탈 수는 있는지 아니면 방법을 까먹었는지 궁금해서 자전거를 빌려 보려 했지만, 나노카가 내일 묵을 호텔에서 무료로 자전거를 빌려 준다고 하기에 내일을 기약했다. 하지만 전동 트라이카(서서 타는 3발 전동 바이크)는 좀 타보고 싶었었고 가격이 싸다면 하나 질러 볼까 하는 생각이 드는 재미있는 물건이었다.



일단 짐이 많아서 호텔에 체크인 했다. 호텔 이름은 정관루라고 하는데, 호텔이라기 보다는 중국 음식점 이름이라 오해하기에 딱 좋다. 여러 종류의 특이한 방이 많았지만 우리는 애 때문에 한실을 선택했다. (게다가 유일하게 한실에만 TV가 나온다)

冬春이는 도착할 때쯤 완전히 지쳐서 잠들어 버렸다. 그렇게 뛰어 놀았으니 지칠 만도 하다만 딱 좋은 타이밍에 잠이 들었다. 덕분에 우리도 1시간쯤 누워 있으면서 해가 좀 기울어지기를 기다렸다.



해가 뉘엿해지고 다시 우리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짐을 모두 두고 가벼운 몸과 가벼운 옷차림으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나노카는 다시 팔팔해져서 셀카나 찍어대고 있었고 나도 팔팔해져서 나노카 닮았을 법한 이상한 조형물이나 찍어댔다. 그러는 동안에 冬春이도 팔팔해져서 온 잔디밭을 헤집고 뛰어 다녔다. 땅거미가 깔릴 때쯤에는 그 많은 아베크 커플들은 사라지고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나 워크샵을 온 듯한 직장인들만 남아 있어서 그나마 쾌적했다.



6시 이후에도 문 여는 식당에 가서 추억의 도시락이라는 메뉴를 먹었다. 어릴 때 '뻰또'라고 부르던 곳에 밥 + 볶은 김치 + 계란을 넣고 흔들어 비벼 먹는 메뉴이다. 사진에서 보듯 장갑을 끼고(뜨거워서) 도시락을 옆으로 막 흔들면 된다. 집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메뉴이지만 밖에서 먹는 것이기에 조금은 색다른 메뉴였다.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산책을 더 하고, 돌아 올 때는 편의점에 들러서 오늘 밤 일용할 양식을 사 왔다.

TV에서 하는 '전설의 고향'을 보고 나서는 내일의 일정을 위해 바로 잠자리에 들려 하였지만 冬春이가 역시 우리를 도와 주지 않았다. 그래서 11시에 冬春이를 유모차에 태운 후 깜깜한 길로 다시 산책을 나갔다. 섬 내의 숙박시설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 섬 안에 남아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대부분의 큰 길에도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예상치 못하게 많은 을 볼 수 있었다. 정말 어릴 때 보았던 수준의 많은 별들을 한 번에 볼 수 있었고 여름 별자리의 기억을 더듬어 하나하나 별 이름을 생각해 내었다. 주위에 나무가 많아서 시야의 한계는 있었지만 머리 꼭대기 쪽에 있는 '견우'와 '직녀'는 바로 알 수가 있었고, 그 사이를 지나는 은하수를 맨눈으로 볼 수 있을까 해서 나노카와 20여분을 하늘만 바라 보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내 인생의 숙제인 '육안으로 은하수 보기'는 실패했다. 아무리 어둡다고 하지만 호텔 불빛이 있다 보니 눈의 '적응시'(군대 야간 사격 용어)에 실패를 했다.



새벽에 冬春이가 우는 바람에 나와 나노카는 잠이 완전히 깨어 버렸다. 그리고 누워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미 6시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잠은 자야 하니 3시간 정도 눈을 붙였고, 아침 조식이고 뭐고 다 날려 버리고 체크 아웃 마감시간인 11시에 맞춰서 겨우 호텔에서 나왔다.

선착장으로 가니 이미 간단하게 관광을 끝낸 일본인 그룹이 있었다. 그들은 욘사마만 보면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짧은 시간에 후딱 보고 가서는 그 진가를 모를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있어서의 여기는,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보면 많은 것을 얻어 갈 수 있는 그런 곳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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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물독 at 2008/09/04 07:57  r x
저도 오후에만 있다가 나와서 춘천에서 1박을 했었는데, 남이섬에서 1박을 하면 그렇게 지낼 수 있군요... 신기...
그나저나 슴갈님 인생의 숙제를 제가 경험해 봤다니.. 조금 우쭐해 지는데요. ㅋㅋㅋ
Replied by 안영기 at 2008/09/06 20:50 x
이런 부럽습니다.... 은하수가 4등급이라고 하는데 그 때는 한 3.5등급까지는 보였을꺼라 생각되네요. 어릴 때 읽은 책에서는 육안으로 6등급까지 볼 수 있다고도 한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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